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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의 도사를 찾아서

완 재 2016. 5. 26. 13:25




0, 道士를 찾아서

群峭碧摩天 逍遙不記年 군초벽마천 소요불기년

撥雲尋古道 倚樹聽流泉 발운심고도 의수청류천

花暖靑牛臥 松高白鶴眠 화난청우와 송고백학면

語來江色暮 獨自下寒煙 어래강색모 독자하한연

 

산봉우리 하늘에 치솟는곳 도사는 햇수를 모르고 사네

구름을 헤치고 옛길을 찾아 가다가 나무에 기대어 듣는 샘물 흐르는 소리

꽃그늘 따뜻하여 청우는 눕고 솔은 높아 백학이 졸고 있구나 

이야기 하다 보니 강 빛이 어두어 홀로 차거운 안개에 젖으며 산을 내려 온다

-李 白-


이 시는 起承轉結(기승전결)로 초, 중, 장, 노년, 인생의 전반을 표현한 시이다. 


이백(리바이, 李白, 중국어 병음: Lǐ Bái, 701~ 762)은 중국의 시인이다.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촉나라 쓰촨 성 쑤이예 출생이다.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힌다.

이 두 사람을 합쳐서 "이두(李杜)"라고 칭하고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현재 약 1100여 수의 시들이 남아 있다.

 

이백은 고시(古詩)와 절구(絶句)를 특기로 했다. 그의 절구는 '신품(神品)'이라고 평해졌고, 그의 시재(詩才)는 천래(天來)의 재, '천재(天才)'라고 했다. 그의 시는 스케일이 크고, 또한 박진감이 있으며, 때때로 환상적이다. 또한 그의 시는 매우 자유로우며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한 번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동시대에 살았던 11세 연하의 시인 두보(杜甫)11구의 조탁(彫琢)에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 현종의 부름을 받고 그대로 궁전으로 들어가 계속해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이백은 촉나라 쓰촨 성 쑤이예에서 태어났다. 이백의 아버지가 중앙 아시아에서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東巖子)라는 선인과 쓰촨 성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江南)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74443세에 현종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어 장안(長安)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현종의 측근인 고역사(高力士)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낙양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永王 璘)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랑(夜郞, 지금의 구이저우 성)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1세에 안후이 성 당도(安徽省 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장강(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위키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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