勸善懲惡(권선징악)
勸(권할 권)
善(착할 선)
懲(혼날 징)
惡(악할 악)
(착한 행동을 권하고 악한 행동을 징계하다)
노(魯)나라 성공(成公) 14년 9월에 제(齊)나라로 공녀(公女)를 맞이하러 가 있던 교여(僑如 : 宣伯)가 부인 강씨(姜氏)를 제나라로 데리고 돌아왔다.
교여라고 높여서 부른 것은 부인을 안심시켜 슬며시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다. 이보다 앞서 선백(宣伯)이 제나라로 공녀(公女)를 맞이하러 갔었을 때는 선백을 숙손(叔孫)이 라고 불러 군주(君主)의 사자로 높여 부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군자(君 子)는 이렇게 말한다.
"춘추(春秋) 시대의 호칭은
알기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알기 쉽고,
쉬운 것 같으면서도 뜻이 깊고,
빙글빙글 도는 것 같으면서도 정돈되어 있고,
노골 적인 표현을 쓰지만 품위가 없지 않으며,
악행을 징계하고 선행을 권한다.(勸善懲惡)
성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지을 수 있겠는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위의 글은「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글이다.
「한서」의 '가이전'에는 '경축하고 상을 줌으로 선을 권하고 형벌로써 악을 징계한다'했고,
「한서」의 '한연수전'에는 '상과 벌을 가지고 이것으로 선을 권하고 악을 금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공자가 지은「춘추(春秋)」는 노(魯)나라 12대 240년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지만,
역사에 대한 공자의 비판이 담겨 있는 책으로, 역사서에 도덕적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세상의 난신적자(亂臣賊子)를 두렵게 하여, 어느 경전보다 권선징악적 기술이 많다.
공자는 「춘추」를 자신의 분신처럼 알아 후세 사람들의 비판과 모범을 춘추로 받으려 했을 만큼 심혈을 기울여 지었으며, 후세에 당당하게 내놓을 만한 내용을 담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양면성이 있다. 중국역사상 대부분의 왕들은 공자나 맹자의 왕도 정치를 이상으로 알았고, 도덕적 권선징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행면에서는 한비자의 법가(法家)식 권선징악을 더 따랐던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양면성이 있다 하더라도 '권선징악'을 현대에 계승하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만 징악(懲惡)보다는 권선(勸善)쪽에 보다 주력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