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浮雲
空手來空手去是人生(공수래공수거시인생)
生從何處來死向何處去(생종하처래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生也去來亦如然 (생야거래역여연)
獨有一物常獨露 (독유일물상독로)
澹然不隨於生死 (담연불수어생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태어남은 어디서 오며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인데,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나니
태어남과 죽음도 모두 이와 같을진데
한 물건이 홀로 있어 항상 홀로 이슬처럼 드러나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는구나.
이 시는 고려 공민왕 때 왕사(王師)를 지냈던 나옹선사(懶翁禪師. 법명 惠勤. 시호 禪覺. 1320∼1376)의 누님이 동생인 나옹에게 염불을 배우고 나서 스스로 읊었다는 <부운(浮雲)>이라는 제목의 빼어난 선시(禪詩)로서,
태어남과 죽음을 한 조각 뜬구름(一片浮雲)의 기멸(起滅)에 비유했다.
참으로 명시다.
태어나는 것을 한탄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을 슬퍼하지도 않고,
오고 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또한 그 가운데 생사 없는 도리를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를 보고 잘 되었다, 못 되었다 평가할 것이 아니라,
이 속에 들어 있는 문제 하나를 풀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물건이 홀로 있어 항상 홀로 이슬처럼 드러나 담연히 생사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 생사를 따르지 않는 담연한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아는 자는 뜬구름을 원망하지 않으리라.
만나고 헤어짐을 기약하지도 않으리라.
기약이 없는 세계에 나아가려면 바로 그것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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