寬仁厚德 관인후덕
寬(너그러울 관)
仁(어질 인)
厚(두터울 후)
德(덕 덕)
어질고 너그럽고 덕이 두텁다.
세상엔 관인 후덕한 군자(君子)에게 사람이 모여든다. 사람이 자산인데 어찌 그 사람이 성공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세상은 관인후덕하기 보다는 인색하고 야박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 걱정이다. 인색하고 야박하면 나라도 잃는다는 얘기가 있다. 하물며 부자가 덕을 베풀지 않고 인색하고 야박하게 굴면 어찌 그 부(富)를 유지 할 수 있겠습니까?
인색한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자신에게는 후하면서 남에게는 인색한 경우가 있으며 자신과 남 모두에게 인색한 경우도 있고, 자신에게는 인색하면서 남에게는 후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가치관에 달린 것이니 다른 사람이 인색하다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고 노후를 위해 아껴서 비축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인색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면 조심할 일이다. 무릇 재물이란 인색하지 않으면 모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인색하게 모으고 나서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탈이다. 천성이 인색한 사람은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씀씀이도 넉넉하지 못하다. 그렇게 인색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나중에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되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백성의 인심을 잃는 것은, 마른 밥 한 덩이 때문에 잘못되는 것이다. (民之失德 乾餱以愆)”라는 말이 나온다. 선현들은 인색함의 의미를 ‘부족함’으로 풀이하였다. 기(氣)가 부족한 것이든,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것이든 부족한 것이 인색함을 불러 오는 것이 아닌지요?
부족하면 채우려고 하고, 불안하면 비축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인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성호(星湖) 이익(李瀷 : 1681~1763))의『성호사설(星湖辭說)』「잡찬(雜簒)」에 인색과 관련하여 두 가지 경계를 든 것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인색한 경우다. 잘 먹지도, 잘 입지도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못 해본 채 마지막까지 움켜쥐고 있다가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
또 다른 하나는 남에게 인색한 경우다. 자기에게 필요치 않은 것이라도 남에게 주는 것은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이다. 자기 배는 부르고, 남겨두면 음식이 상해도 다른 사람에게 주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는 주의해야 한다. 그 인색함의 영향이 자신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타인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화원(華元)과 자가(子家)라는 사람을 성호가 인색한 사람의 예로 들었다. 화원이 어느 날 염소를 잡아서 그 부하 군사를 먹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마부 양짐(羊斟)이 그 자리에 끼지 못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양짐이 나중에 전투할 때 “지난번에는 당신 마음대로 염소를 처리했으니,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라고 하면서 수레를 몰고 적진으로 투항해 버렸다.
자가는 공자(公子) 귀생(歸生)이라는 사람이다. 귀생이 임금을 뵈러 갔을 때 일이다. 함께 간 자공(子公)이 진귀한 음식을 먹게 되면 식지(食指)가 동하는 습관이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일부러 자라탕을 나누어주지 않자 원한을 품고 자공과 함께 그 임금을 시해(弑害)하고 말았다.
중산국(中山國) 임금도 위의 두 경우처럼 양고기 국 때문에 나라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자신을 호위하며 따라오던 두 병사를 보고 물었다. “너희는 내가 특별히 은혜를 베푼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왜 끝까지 남아있는 것이냐?” 병사는 말한다. “임금님께서는 굶어 죽어가던 저희 아비에게 밥 한 덩이를 내려 살려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저희는 나라가 위태롭게 되면 목숨을 바치라고 한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탄식을 했다. “베풀어주는 것은 그 양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얼마나 절박한가에 달렸고, 원한을 사는 것은 그 정도의 깊고 옅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구나.”
덕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쌓이는 것이다. 성실하고 후덕하게 살면 이해도 지식도 사리 분별력도 자신의 나이만큼 쌓인다. 그런 것들이 쌓여 후덕한 인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닌지 후덕한 사람은 늘 인자하고 겸손하다. 그리고 부지런하며 텅 빈 마음으로 항상 자신을 낮춘다.
그리고 남을 공경(恭敬)하며 덕화(德化)로써 상하를 두루 포용하고 끊임없이 베푼다. 또한 아무리 낮은 사람이라도 경외심(敬畏心)을 갖고 대한다.
그리고 인색한 사람은 성질이 거칠고 공경심이 없다. 그리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 한다. 또한 학식 재산 권세 기술 등 한 가지 능한 것이라도 있으면 상(相)을 내고 자만하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 인색의 끝은 염소고기 조금으로 배반도 당하고, 자라탕 한 그릇으로 목숨도 잃게 된다. 세상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대중의 마음은 마침내 덕 있는 사람을 따른다. 그리고 하늘의 뜻은 마침내 사(私)없는 이에게 돌아간다. 이와 같이 관인후덕한 사람은 큰 덕을 쌓아가며 세상에 덕 보다 큰 것은 없으니까. 관인후덕한 사람은 어질고 너그럽고 덕이 두터운 사람이다. 어렵더라도 따르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정신 육신 물질로 베풀고 산다. 없이 살아도 늘 조금 손해 보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두 팔을 부르걷고 뛰어드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우리 혹시라도 인색한 소인이 되지 말고 관인 후덕한 대인으로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