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훈

박종희 교장 훈

완 재 2010. 3. 15. 17:43

 

 

  

 

0, 韜光養晦 도광양회 (韜 감출 도, 光 빛 광, 養 기를 양, 晦 그믐 회)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도광이라고도 한다.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 남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던 계책이다.또 제갈량(諸葛亮)이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써서 유비로 하여금 촉(蜀)을 취한 다음 힘을 기르도록 하여 위(魏)·오(吳)와 균형을 꾀하게 한 전략 역시 도광양회 전략이다. 그러나 도광양회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러한 고사 때문이 아니라, 1980년대부터 중국이 취한 대외정책 때문이다.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중국은 '기미(羈縻)' 정책을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기미란 굴레를 씌워 얽맨다는 뜻으로, 주변국을 중국의 세력 범위 안에 묶어두고 통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중국은 그동안 초강대국인 미국의 그늘에 가려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 도광양회를 기미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대외정책의 뼈대로 삼았다. 이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국력이 생길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면서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전술적으로도 협력하는 외교정책을 말한다.이후 20여 년 간 도광양회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대표하였다. 그러나 2002년 11월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으로 한 제4세대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도광양회는 새로운 외교노선으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화평굴기,·유소작위,·부국강병, 등으로 이어지는 대외전략이다.

0, 도광양회 (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름)에서

후진타오 시대의 화평굴기(和平掘起;평화적으로 우뚝 섬)와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함)로 변화 함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중국은 '기미(羈縻)' 정책을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았을 때

당에내린 24자의 기본 방침

冷靜觀察 냉정관찰--냉정하게 관찰하라

檼住陣脚 은주진각--발판을 튼튼하게 하라

沈着應付 침착응부--침착하게 대처하라

韜光養晦 도광양회--주제넘게 참견하지말고 실력을 길러라

善於守拙 선어수졸--적합하게 상대하라

絶不當頭 절부당두--실력이 될 때까지 절대로 우두머리가 되지 말라

이중 등소평은 도광양회를 가장 중요시 여겼다

0, 上善若水(상선약수)

* 가장 위대한 善은 물과 같다

丁亥年嚴寒之節硏墨鍊齋東窓下玩齋書

정해년엄한지절연묵연재동창하완재서

정해년 아주 추운계절 연묵재 동쪽 창 아래서 완재 쓰다.

老子(노자)에는 ‘上善若水(상선약수)’라는 말이 있다. ‘上’은 ‘위’라는 뜻이고, ‘善’은 ‘선, 착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上善’은 ‘가장 위에 있는 善’, 즉 ‘가장 위대한 善’이라는 말이 된다. ‘若’은 ‘∼와 같다’라는 뜻이고, ‘水’는 ‘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若水’는 ‘물과 같다’라는 뜻이다. 이상의 내용을 합치면 ‘上善若水’는 ‘가장 위대한 善은 물과 같다’라는 말이 된다. 老子는 왜 가장 위대한 善을 물에 비유하였을까?

물에는 다음과 같은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물은 공평함을 나타낸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수평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물은 조금만 상하의 차가 있어도 반드시 아래로 흘러서 수평을 유지한다. 수평은 곧 공평이다.

둘째, 물은 완전을 나타낸다. 물은 아래로 흐를 때, 아주 작은 구덩이가 있어도 그것을 완전하게 채우면서 흐른다. 그러므로 물이 수평을 이룰 때, 그것은 완전한 수평이다.

셋째, 물은 상황에 따라 한없이 변하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다. 물을 네모난 그릇에 넣으면 네모로 변하며,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변한다. 그러나 그러한 물을 쏟아 보면 언제나 본래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넷째, 물은 겸손하다. 물은 가장 중요한 생명의 근원이지만 언제나 아래로 흐르며 낮게 있는 모든 곳을 적셔 준다. 아마도 노자는 물과 같은 삶을 추구한 것 같다. 그러므로 ‘上善若水’, 가장 위대한 善이 물과 같다고 했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삶, 아무리 작은 구덩이라도 메워 가는 삶, 그래서 물과 같은, 그런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0, 吾唯知足(오유지족)

“나는 오직 만족 함을 안다”

 

能知足者天不能貧 능지족자천불능빈

족함을 아는 자 는 하늘도 가난하게 못하고

能無求者天不能賤 능무구자천불능천

구함이 없는 자 는 하늘도 천하게 못한다

0, 一切唯心造 :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의 조화이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의 의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다"는 의미이다. 원효 대사가 의상 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어느 무덤 근처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찾아 마셨는데 그 맛이 참으로 꿀맛 같았다. 하지만 아침에 깨어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구역질이 났다. 그때 그는 같은 물을 마시고도 이렇게 다르다는 생각에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어 그 길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원효대사>

참조: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 ..... 모든 것에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

좀 더 깊이 있게 들어 가보면... 이 세상을 내 마음이 만들어 냈다는 말은 대상과 마음이 결코 떨어진 곳이 없으며 그렇기에 둘이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손 놀리고 발 놀려서 일하고 땀 흘려 농사짓는 것을 마음이 아닌 몸이 행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몸과 마음이 둘로 나뉜 중생의 견해를 벗어나지 못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몸도 생각이요, 마음도 생각이요, 마음 없이 세상이 있다는 것도 생각이요,

마음 때문에 세상이 있게 되었다는 것 역시 생각입니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무서운 귀신을 만나 그 사람은 겁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귀신에게 붙잡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그 사람이 귀신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제가 당신에게 뭘 해드려야하죠?"

그러자 귀신이 대답했습니다.

"네 꿈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이 세계가 바로 실체가 없는 무아의 꿈 인줄 안다면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자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꿈 속의 귀신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또 귀신으로부터 달아난 것은 몸이었습니까?

아니면 두 다리였습니까? 그리고 귀신의 대답은 누가 만들어낸 것입니까?

오직 생각의 놀음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의 허망함과 동시에 위대함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오온을 설하시어 근거 없는 이름뿐인 나와 세상의 집착을 끊어주셨고, 진정한 여래의 이치를 설하시어 무너지지 않는 금강의 정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부시가 이라크를 침략한 것도 부시의 생각이 곧 그 모습을 만들어냈고,

농사를 지어 벼를 길러낸 것 역시 농부의 생각 하나하나가 이어진 결과입니다.

꿈을 꾸듯 세상은 모두 보이지 않는 '나' 속에 들어와 있으나, 질문하신 분도, 답변하신 분도 모두 각자의 위대한 '나'를 가지고 있으니 삼천대천세계에 펼쳐진 중생의 수만큼의 세계가 있음이 지당한 이치일 것입니다.

금강경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항하에 있는 모래의 숫자를 물으시고, 다시 그 모래만큼의 항하가 있어 그 속의 모래 수를 헤아려 보라고 하신 말씀이 나오듯이,

'나'라는 정신은 분명한 하나이나, 동시에 서로 개체로서 드러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바다와 같습니다.

바다는 하나이지만 파도의 수는 무량하다는 것은 그 좋은 비유가 될 것입니다.

잠이 들었을 때 세상은 사라집니다. 단지 다시 깨어나는 이에 한해 세상은 그 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근거를 가지게 됩니다.

18계를 이루는 진(대상) 근(감각) 식(생각) 중 어느 하나만 사라져도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잠이 들었다는 것은 근과 식이 사라진 상태고 당연히 세계는 없습니다.

그래도 깨어나면 세상이 있지 않느냐는 반문은 세상을 보고 있는 나. 즉, 진근식이라는 조건이 모두 만족될 때 생겨나는 생각일 뿐입니다.

결론을 짓자면 세상은 오직 허망한 생각의 놀음일 뿐이요 환상과 꿈의 영화입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연은 생각이요, 그 생각을 제하면 세상이 없다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이란 본래 허망하니 그것을 없애려고도, 그리고 붙잡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어디에도 걸림 없는 대장부의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0, 立石矢(입석시)

한가지 집념을 굳게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명장에도 곧 장군의 장군다운 그릇과 무공에 뛰어난 막하 장수로서의 알려 진 자가 있다. 한나라 농서 지방의 이광이나 그 손자인 이능 같은 사람이다.

중국의 한나라 문제(文帝-B.C 166)14년때 특히 활 솜씨가 뛰어나고 기마전술에 능한 이광을 자기 수하에 두고 싶어 시종 무관 자리에 앉혔다. 사냥 길에 수행 했을 때 호랑이와 맞붙어 보기 좋게 때려눕히고 위기일발 구사일생으로 호난을 면한 문제는

“참으로 그대는 아깝게 되었다. 고조 시절에 태어나 있었더라면 엄청난 큰 제후로 출세 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닙니다 큰 제후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경의 수비 대장이 소신의 소원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광은 전부터 바라고 있던 변경의 수비 대장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그 동안에 세운 공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처세술이 서툴렀던 탓으로 시셈을 받아 면직 당할 뻔 하기도 하였다.

장군의 진가를 알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적인 흉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漢나라의 飛장군이라하여 감히 이광이 지키고 있는 성새(城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초원에 묻힌 돌을 호랑이로 잘못 보고 쏘았을 때에는 화살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돌에 박혔다. 돌에 화살이 꽂힌 것이다. 가까이 가보아 돌이란 것을 알고 다시 쏘아본 화살은 돌에 꽂히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一念(일념)으로 바위를 뚫는다"의 고사다(史記 李將軍傳-사기 이장군전)

이것은 이광 장군의 궁세(弓勢)를 칭송하는 사람들의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르나 그가 뛰어난 재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立石矢란 立(설 입{립}) 石(돌 석) 矢(화살 시) 화살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지만 한가지 집념을 굳게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 내포 되어 있다.

0, 啐啄同時 - 졸탁동시

啐(맛볼 쵀, 빠는 소리 줄, 떠들썩할, 부를잘) 啄(쫄 탁) 同(한가지 동) 時(때 시)

"안과 밖에서 동시에 노력하다"

'졸탁동시(啐,啄,同,時)는 줄탁동시 또는 쵀탁동시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 말의 어원은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이자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불서(佛書)인 송(宋)나라 때의 《벽암록(碧巖錄)》에 공안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공안이 되었다.

 벽암(碧巖) 16측 공안에 “승(僧)이 경청(鏡淸)에게 묻기를 학인은 ‘졸’하고, 스승은 ‘탁’한다”라는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선(禪)에서는 깨달음의 방식으로 ‘줄탁동시(啐啄同時)’ 란 콘셉트를 사용하고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밖에서는 어미닭이 껍질을 쪼고 안에서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려고 한다.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결코 알을 깰 수가 없다는 것이요.

안과 밖이 시기를 맞춰 동시에 작용하지 않으면 또한 알을 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원리로 하면 학생과 선생이 선후 없이 타이밍을 맞춰서 가르치고 배우는 호흡이 일치해야 된다는 원리이다.

 

 그 의미는 달걀이 어미 닭의 따뜻한 품속에서 부화를 시작하고서 21일째, 껍질 속의 병아리는 안쪽에서 껍질을 쫀다. 이것을 ‘졸’이라 하고, 이에 호응해서 어미 닭이 밖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 한다.

 새끼와 어미가 동시에 알을 쪼지만, 그렇다고 어미가 새끼를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는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새끼 자신이다.

만약 어미 닭이 껍질을 깨어주게 되면 병아리는 건강을 잃고 얼마 후 죽게 된다. 이는 만약 부모로서 자식을 자신의 가치관 속으로 밀어 넣게 되면 자식의 마음(정신력)은 곧 죽게 될 것이다.

 졸탁동시가 주는 메시지는 선(불가)에서 말하는 자기라는 껍질(我相)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는 것이요.

 ‘졸’과 ‘탁’이 조화롭게 잘 이루어진다면, 화목한 가정, 분규 없는 기업문화, 사제 간에 하나가 되는 바람직한 교육 풍토, 이념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가 제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0, 從容有常(종용유상)

從(좇을 종) 容(얼굴 용) 有(있을 유) 常(항상 상) [출전]<禮記>

얼굴에 따른다. 안색, 행동 등을 바꾸지 않고 소신대로 행함.

예로부터 君子가 喜怒哀樂(희로애락)의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는 것은 금물이었다. 얼굴은 인격을 나타낸다고 보았으므로 늘 변치 않는 안색을 지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안색은 늘 움직임이 없는 「조용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유상(有常)은 무상(無常)의 반대로 늘 변치 않는 常道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종용유상이란 외부의 어떠한 상황에도 안색과 행동을 바꾸지 않고 평소의 소신에 따라 정도를 걷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孔子(공자)의 말이다.

그는 지도자의 태도가 그래야 한다고 보았다. 行動擧止(행동거지)가 항상 조용하고 법도에 벗어나서는 안되며(有常), 심지어는 옷도 자주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야만 백성을 다스릴 수 있고 또한 그의 덕에 감화 받아 불변의 충성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활동의 예 - 그러고 보면 종용유상은 우리 모두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참고 - 순수 우리말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흐지부지(諱之非之)․휘지비지) 장난(作亂),야단법석(惹端法席),우악(愚惡) 등이 그렇다. 떠들지 않고 소리 없이 얌전한 것을 조용 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한자 종용(從容)에서 나왔다. 직역하면 “얼굴에 따른다”는 뜻이다.

(애)

一瞬間之忍耐爲 일순간지인내위-한 순간의 인내가

十年安樂之源泉 십년안락지원천-십년의 안락이 된다.

爲강훈군 김주영양

경인년 만추 지절 완재 무호

0, 吐哺握髮:토포악발

 

옛날周公은 초가에 검소하게 살며, 먹던 것도 뱉어 놓고 사람 만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한번 머리 감는 사이 세 번이나 머리 쥔 채 나가 손님 만나서 후세에 성현이라 일컫게 되었다네.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겸손하다."

 

하늘의 도는 자만하는 자를 멸하고 겸허한 자를 이롭게 하며,

땅의 도는 자만한 자를 어지럽히고 겸허한 자에게 순응한다.

귀신은 자만한 자를 해치고 겸허한 자에게 복을 내리며,

사람은 자만한 자를 싫어하고 겸허한 자를 좋아한다.

-주공

 

주공은 아들에게 겸손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현명한 선비를 맞이할 때 머리를 감고 세 번이나 정갈하게 고쳐 묶은 뒤 달려가 맞았으며,

밥을 먹다가도 세 번이나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하면서도 혹시 현명한 선비를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는가 걱정했다.

천하를 가진 천자라도 겸손하지 않으면 천하를 잃고 망하기 마련이다.”

 

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瓜田不納履  李下不正冠  과전불납리 이하불정관

嫂叔不親授  長幼不比肩  수숙불친수 장유불비견

勞謙得其柄  和光甚獨難  노겸득기병 화광심독난

周公下白屋  吐哺不及餐 주공하백옥 토포불급찬

一沐三握髮  後世稱聖賢 일목삼악발 후세칭성현

-聶夷中-   섭이중

 

군자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니, 혐의받을 처신하지 않는다네.

외밭에는 발을 드려 놓지 아니하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관을 바로잡지 아니하며,

형수와 시동생 사이엔 친히 물건 주고 받지 아니하고, 어른과 아이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니지 않는다네.

겸손하게 수고를 하면 권세를 얻게 될 것이나,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일이 매우 어렵네.

옛날周公은 초가에 검소하게 살며, 먹던 것도 뱉어 놓고 사람 만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한번 머리 감는 사이 세 번이나 머리 쥔 채 나 가 손님 만나서 후세에 성현이라 일컫게 되었다네.

 "周公"

주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중국 주(周)나라의 정치가.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해 제도문물을 창시했다. 은족을 회유하기 위해 아들을 노(魯:曲阜)나라에 봉건(封建)하는 등 주왕실의 일족과 공신들을 요지에 배치해 다스리게 하는, 주초(周初)의 대봉건제(大封建制)를 실시해 수비를 공고히 했다.

본명 단(旦) 국적 중국 주(周) 활동분야 정치, 문학 주요저서 《주례(周禮)》

 

이름은 단(旦). 주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동생. 무왕과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무왕이 죽은 뒤 나이 어린 성왕이 제위에 오르자 섭정(攝政)이 되었는데, 당시 은족(殷族)의 대표자 무경(武庚)과 녹부(祿夫), 그리고 주공의 동생 관숙(管叔) ·채숙(蔡叔) 등이 동이(東夷)와 결탁하여 대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소공(召公)과 협력하여 이 난을 진압하고 다시 동방을 원정(遠征)하여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부근 낙읍(洛邑:成周)에 진(鎭)을 설치하였다.

 

주공은 은족을 회유하기 위하여 은(殷)의 고지(故地:商丘)에 주왕(紂王)의 형 미자계(微子啓)를 봉하여 송(宋)나라라 칭하고, 아들 백금(伯禽)을 노(魯:曲阜)나라에 봉건(封建)하는 등 주왕실의 일족과 공신들을 중원(中原)

의 요지에 배치하여 다스리게 하는, 주초(周初)의 대봉건제(大封建制)를 실시하여 주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하였다. 한편,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하여 주왕실 특유의 제도문물(制度文物)을 창시하였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정치 ·사상 ·문화 등 다방면에 공헌하여 유교학자에 의해 성인으로 존숭되고 있다. 저서에 《주례(周禮)》가 있다

0, 破邪顯正(파사현정)

破(깨뜨릴 파) 邪(간사할사) 顯(나타날 현) 正(바를 정)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뜻이다.

이 용어는 특히 三論宗(삼론종)의 중요한 근본 교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正法의 예리한 칼날

한 치도 물러섬 없는 번뜩이는 지혜

뇌성벽력 폭풍우 휘몰아 邪道를 휩쓰네.

인정사정 남김없이 다 쓸고 간 폐허의 땅

부처 중생 흔적조차 찾아지지 않는 무인도

뉘 있어 오늘 지극한 道, 부처 정법 펼치리.

파란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짙푸른 물빛

오욕의 한 생 숱한 인연들 품어 안고 녹이는 忍苦의 德

흔들림 없는 너른 마음에 깊은 멍 숨겨 홀로 안고 흐르네.

*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악한 도리를 깨뜨리고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파현)

0, 삼론종[三論宗]

중국 수나라 때에 번성한 불교 종파의 하나.

'3론'(〈중론 中論〉·〈백론 百論〉·〈십이문론 十二門論〉)을 널리 내세움으로써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 "모든 것은 본성적으로 실체가 없다"(諸法性空)는 설을 거듭 천명했기 때문에 '법성종'(法性宗)이라고도 불린다. 삼론종은 법랑(法朗:507~581) 때부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긴 했으나 실질적인 창시자는 길장(吉藏:549~623)이라고 할 수 있다. 길장은 구마라집(鳩摩羅什)과 승조(僧肇)의 옛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승랑(僧朗), 승전(僧詮), 법랑의 계통을 이었으며, '3론'에 대한 주소(注疏)를 쓰고 〈삼론현의 三論玄義〉를 저술하여 인도의 용수(龍樹 Ngrjuna)와 데바(提婆 ryadeva)의 중관사상(中觀思想)을 이어받아 널리 폈다. 이 종파의 기본사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을 바르지 않다고 보고 아무런 집착이 없는 것을 바르다고 본다. 언어에 집착하여 머무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여 마음에 집착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가르침의 주된 내용으로 하여,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모든 견해를 깨뜨릴 것을 주장하며 얻을 것이 없음을 종파의 중심적 사상으로 삼았다. 둘째, 세속에서 만물에 대하여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俗諦)과 불교에서 만물에 대하여 허공과 같이 실체가 없다고 보는 것(眞諦)은 "둘이되 둘이 아니다"(二而不二)라고 하여 어느 한쪽의 관점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셋째, 만물은 근본적으로 "생성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고 순간적이지도 않으며, 하나인 것도 아니고 여럿인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不生不滅 不常不斷 不一不異 不來不去)라고 하는, 이른바 '팔부중도'(八不中道)를 설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구려 때에 3론에 조예가 깊은 승려들이 많이 있었으니,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3론의 가르침을 부흥시켜 승전에게 전한 승랑이 고구려 출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길장에게서 삼론종의 학설을 배워 일본에서 삼론종을 개창한 혜관(慧灌)도 고구려 출신 승려였다. 혜관에 의하여 625년에 삼론종을 받아들인 일본에서는 지장(智藏)이 혜관에게서 배운 뒤 다시 당나라에 가서 길장으로부터 배우고 귀국하여 원흥사(元興寺)를 개창했고, 지장의 제자인 도자(道慈)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따로 대안사(大安寺)를 개창하여 별도의 유파를 형성했다. 삼론종은 중국 내에서는 당나라 이후로 점차 쇠퇴했다.

0, 浩然之氣

호연지기는 사물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마음.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 찬 넓고도 큰 원기를 말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호연지기를 길러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원대한 이상을 품고 밝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려 하더라도 호연지기를 갖추지 않는다면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하기 때문이다. 호연지기를 갖출 때 우리는 보다 자유롭고 너그러워 질 수 있고 보다 크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여유 있게 차근차근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호연지기를 갖추기 위해서는 마음을 넓게 갖고,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고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추수하는 농부의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순리대로 생활하면서 바른 뜻을 키워 나가는 것이야말로 호연지기라 한다.

1 널리 천지간에 두루 퍼진 넓고 큰 기운.

도의에 근거(根據)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마음

2 공명정대한 의리가 마음에 가득 차 이루어진 것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 찬 넓고도 큰 원기(元氣).

3 자유롭고 유쾌한 마음.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운 바 없는 용기.

잡다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自由)로운 마음

浩氣(호기), 正大之氣(정대지기), 正氣(정기)

-孟子 公孫丑篇-

맹자가 제(齊)나라에서 제자 공손축(公孫丑)과 나눈 대화다.

“선생님이 제의 대신이 되어서 도를 행하신다면 제를 틀림없이 천하의 패자(覇者-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도 아마 동심(動心-책임을 느껴 마음을 움직임)하실 것입니다.”

“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맹자는 그것을 용(勇)이라 말하였다.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이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용(大勇)이라 하였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告子-맹자의 논적(論敵-맹자의 성선설 부정)〕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알고 있다〔知言〕. 거기에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있다. 지언(知言)이란 피사(편협한 말), 음사(淫辭-음탕한 말), 사사(邪辭-간사한 말), 둔사(遁辭-피하는 말)를 가려낼 수 있는 명(明)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며, 기(氣)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기는 의(義)와 도(道)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敢問夫子 惡乎長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敢問何謂浩然之氣 曰, 難言也 其爲氣 至大至감문부자 악호장 왈 아지언 아선양오호연지기 감문하위호연지기 왈, 난언야 기위기 지대지剛 以直養而無害 則塞天地之間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婚也 是集義之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강 이직양이무해 칙색천지지간 기위기야 배의여도 무시혼야 시집의지소생자 비의습이취지야行有不慊於心 則婚矣.

행유부겸어심 칙혼의

질문 중에 '인위적으로 싹을 크게 한다[助長조장, 揠苗助長알묘조장, 拔苗助長발묘조장]'는 성어는 호연지기를 설명하는 중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송나라 사람 중에 자기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싹을 뽑아 올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피곤해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집안사람들에게 '오늘은 피곤하구나. 나는 싹이 자라도록 도와주었거든[予助苗長矣/여조묘장의]' 이라고 했는데, 그의 아들이 가보았더니 싹은 이미 말라 버렸다. 무리하게 잘 되게 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싹을 뽑아 올리는 것과 같으니, 무익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치는 것이다."

 

0, 剛健中正

剛(단단할 강, 굳셀 강)

健(튼튼할 건, 건장할 건)

中(가운데 중-중용)

正(바를 정, 바로잡다)

굳세고 건장하여 중심이 바르다.

*, 中庸 (中和)

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오 發而皆中節을 謂之和니라

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희로애락이 발(發)하지 않는 상태를 중이라 하고, 발하여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한다.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요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중은 천하의 대본이요, 화는 천하의 달도(통용되는 도)이다

致中和면 天地位焉하며 萬物育焉하니라.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과 화에 이르게 되면, 하늘과 땅이 제 자리에 있게 되고 만물이 자라게 된다.

☞ 본래 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이해를 돕기 위해 2장으로 나뉜 것을 수록하였으며, 주자는 이 1장을 중용의 총론으로 생각하여 제일 중요한 장으로 여겼다.

@, 中(중) 이라고 하는 것은 희로애락이 나타났어도 나타내지 않는 것이고, 喜怒哀樂이 나타 날 때는 유효적절이 나타내는 것을 화라 하는데 중화가 합하여 道(도)라 하고 도를 이루는 것을 중용이라 한다.

수시처중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중용(中庸)의 도(道)를 지킨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한 곳으로 치우침이 없는 도리, 진정한 삶의 중심을 지키면서 자신의 주체를 잃지 않는 자세를 중용(中庸)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개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사욕(私慾)이 배제될 수 있는 상황이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거창한 철학적인 정의를 논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의 중용(中庸)의 도를 지켜나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고사에서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라는 평범한 구절 속에 우리가 어렵게 지키려고 하는 중용의 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유불급"의 출전은 《논어(論語)》〈선진편(先進篇)〉에 공자(孔子)와 제자 자공(子貢)간의 문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다른 제자인 자장(子張)과 자하(子夏)에 대해} 물었습니다."사(師:자장의 이름)와 상(商:자하의 이름)은 누가 어집니까?"하니, 공자가 답하기를"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하니, 다시 자공이 반문하기를"그럼 사가 낫다는 말씀입니까?"하니, 공자는 다시 답하기를"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O 子貢 問師與商也 孰賢,  子曰 師也 過 商也 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논어(論語) 전편을 통해 볼 때, 자장과 자하는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공자는 활달한 기상과 진보적 사고를 지닌 자장(子張)과 만사에 신중하고 현실적인 행동을 하는 자하(子夏) 모두를 중용(中庸)의 도가 부족한 인물로 평가한 것입니다.

過猶不及. 곧 중용의 도를 이야기할 때 잘못 오해하고 곡해(曲解)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색의 논리이고 양비(兩非), 양시(兩是)의 논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유학(儒學)에서 이야기하는 "수시처중(隨時處中)"의 논리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수시처중은 "때에 따라서 중도(中道)에 처한다."는 아주 진솔한 논리입니다. 곧 고정불변(固定不變)의 진리란 없습니다. 변화되는 시대적 상황에 정도(正道)로 올바로 대처하는 것이 바로 중용(中庸)의 도(道)인 것입니다. '예(禮)'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 예를 지켜나가는 일은 중요한 것이지만 고루한 형식주의(形式主義)나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빠져 그릇된 가치를 고집하는 일은 과유불급, 중용의 도를 올바로 인식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결과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또한 "무욕(無慾)"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양의 철학 사상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가(儒家)를 비롯하여 불가(佛家), 도가(道家) 역시 '욕심을 갖지 말라'는 무욕(無慾)의 의미를 사상의 기저(基底)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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