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저지와
전한이 망하여 왕망이 신(新)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뒤이어 후한이 일어날 즈음 마원(馬援)이라는 인재가 있었다. 마원의 선조는 전한의 무제 때부터 관리였다. 그에게는 형이 셋 있었는데, 모두 재능이 있어서 관리가 되었으나 마원만은 큰 뜻을 품고 한동안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고 조상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뒷날 그는 군장(郡長)이 되어 죄인을 서울로 호송하다가 그 죄수가 너무나 가여워 호송 도중에 놓아 보내고 자기도 죄를 두려워 하여 북방(北方)으로 망명했다. 후에 용서 받아 농사와 목축에 종사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큰 부자가 되어 많은 식객을 거느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원의 집안 일을 돌보아 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집들이 수백에 이르렀다. 마원은 말하기를 '마땅히 부자란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그렇지 못하면 다만 수전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며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는 험한 옷을 입고 일하기에 바빴다. 왕망의 신나라가 망하고 후한이 일어나자 마원은 형인 원(員)과 함께 서울에 올라가서 관리가 되었다. 그런데 농서 감숙(甘肅)의 제후 외호는 마원의 인물됨에 반하여 그를 장군에 앉히고 무슨 일이든 그에게 의논했다. 그 즈음 공손술은 촉나라 땅에서 제(帝)라 일컫고 있었다. 외호는 공손술이란 사람이 대체 어떤 인물인가 궁금하여 마원으로 하여금 가서 보고 오게 했다. 마원은 공손술과는 같은 고향 친구였으므로 찾아가기만 하면 달려 와서 손을 잡고 반가워 해 주리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촉으로 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에 무장한 군인들을 줄지어 세워 놓고 뽐내는 태도로 마원을 맞이했다. 그리고는, "옛날에 친분을 생각해서 너를 장군으로 써 줄 테니 여기 있으라."하고 거만하게 말했다. 마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천하의 자웅(雌雄)은 아직 결정이 되지도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의로써 천하의 국사(國士)와 현자(賢者)들을 맞이하려 하지 않고 거만한 태도로 위엄을 보이려 하니, 이런 자에게 이 세상 일이 알아질 리가 없다.'하고 부랴부랴 그 곳을 떠나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외호에게 아뢰었다. "그 사나이는 정녕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입니다. 조그만 촉나라 땅에서 뽐내는 것밖에 알지 못하는 놈이옵니다. 상대하지 않는 것이 옳을까 하옵니다." 이 말을 듣고 외호도 공손술과 친히 지낼 생각을 버렸다. 뒤에 마원은 외호의 명령으로 서울에 올라가 광무제를 만났다. 광무제는 마원에게 "경은 2세(世) 사이를 갔다 왔따 한 모양인데, 무슨 까닭인가?"하고 물었다. 마원은 공손히 대답했다. "지금 세상은 임금이 신하를 골라 쓸 뿐 아니라 신하도 임금을 골라서 섬기옵니다. 공손술은 무장한 병사를 옆에 거느리고 저를 만나 주었습니다. 그러하오나 폐하께서는 지금 제가 자객인지도 모르실 텐데 호위도 없이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웠습니다." 광무제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오. 경은 자객이 아니라 세객(說客)이요, 천하의 국사요. 그런 경을 그렇게 대해서는 실례가 될 것 아니오." <장자>의 '추수편(秋水篇)'에 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북해의 해신이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를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만 알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가 얼음을 이야기 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름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한쪽만 알고 다른 쪽을 모르는 사람과 도(道)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만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천지와 더불어 있는 것을 존귀하게 생각한 장자에게 있어서는 인(仁)이나 예(禮), 의(義)에 구속되는 유교의 무리는 더불어 이야기할 수 없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후한서>'마원전(馬援傳)' |